미필적 고의
법적 분쟁, 특히 형사 사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면서도 일반인들이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 바로 ‘미필적 고의’입니다.
피고인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법원은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미묘한 심리적 경계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미필적 고의란 무엇인가?
미필적 고의(Dolus Eventualis)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며 그 위험을 받아들인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특정한 결과를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확정적 고의)는 없었더라도, 최소한 ‘일이 잘못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방임이나 용인이 있었다면 법은 이를 고의로 간주합니다.
2. ‘알고도 저지른 실수’와 무엇이 다른가?
많은 분이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헷갈려 하십니다.
두 경우 모두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인지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결과를 대하는 ‘내심의 태도’에 있습니다.
먼저 미필적 고의는 결과 발생 가능성을 예견하면서도 “일어나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그 위험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반면, 인식 있는 과실은 “설마 진짜로 일어나겠어? 나는 피할 수 있어”라며 결과 발생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주의력을 과신한 상태를 말합니다.
법적으로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고의범‘으로 처벌받지만, 인식 있는 과실로 판단되면 훨씬 가벼운 ‘과실범’으로 처벌받거나 해당 과실 규정이 없는 경우 처벌을 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판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판단할까?
사람의 속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으므로, 법원은 피고인이 당시 상황에서 범죄 결과를 정말로 용인했는지를 객관적인 정황을 통해 추론합니다.
📌 행위의 위험성: 사용한 도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공격한 신체 부위가 급소였는지 등을 봅니다. 예를 들어, 흉기로 가슴을 찔렀다면 “죽일 마음은 없었다”고 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 범행 전후의 사정: 범행의 동기가 뚜렷했는지, 범행 직후 피해자를 구호했는지 혹은 그대로 방치하고 현장을 떠났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 일반인의 관점: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겠구나”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를 따져봅니다.
4. 실무에서 자주 발생하는 사례
📌 보이스피싱 가담: “단순히 고수익 알바인 줄 알았다”고 주장해도, 업무 방식이 비정상적이고 현금을 수거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게 범죄일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을 품었음에도 계속했다면 사기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됩니다.
📌 음주운전 사고: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사고가 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방임이 있었다고 판단되면, 사고 발생 시 단순 과실보다 무겁게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 아동학대: 아이를 장시간 방치하거나 가혹하게 폭행하면서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면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가 적용됩니다.
법은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다”거나 “범죄인 줄 확실히 몰랐다”는 변명 뒤에 숨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위험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치한 채 행동에 나섰다면, 법은 그것을 ‘의도된 범죄’와 동일하게 엄중히 처벌합니다.
따라서 본의 아니게 복잡한 사건에 휘말렸다면, 당시 자신의 내심에 ‘결과 발생에 대한 용인’이 없었음을 객관적 증거로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